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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년 장사하신 어머니와 이야기는 잘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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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가난했습니다.

어찌나 가난했던지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할때까지 푸세식 화장실을 썼고 신문지가 뒷처리용이였죠.

나이 들어보니 여자인 어머니는 어땠을까 싶습니다.

정말이지 


전 초등학교2학년때부터 어머니 장사를 도와드렸습니다.

형은 공부를 너~~~~무 잘해 시키지 않으셨어요.

전 공부보단 장사가 재미었습니다.

길거리 노점이였는데 

콩물에 우뭇가시리를 넣었던걸 팔았던게 제 기억의 첫번째 장사입니다.

어릴때 기억이라 정확하진 않지만 옥수수도 삶아서 팔았고

꿀차라고 팔았던 기억도 있습니다.


중학교에 들어갔을때 즈음 어머니는 길다방이라고 리어카에 커피를 팔았는데 이게 아마 대한민국 최초였을거에요^^

그러다 비빔밥을 시장통에 다니시면서 장사하는 사람들에게 파셨고 

그후 김밥장사, 순대장사 등등 리어카를 끌고 다니시며 장사를 하셨습니다.


중학생때부터 밤 11시가 되면 어머니 계신곳으로 가서 리어카를 집으로 끌고 왔습니다.

그때 기억으로 그 리어카 정~~~말 무겁웠습니다.

집까지 약 4KM를 끌고오면 바닥에 주저 앉아 숨을 헐떡였으니깐요.

어머닌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ㅜ.ㅜ

(몇년전 거리를 재 봤습니다)


아버진 그냥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2년전 돌어가셨고 

언제나 술에 취했고 어머니를 구타하는 모습만 기억할 뿐입니다.


중간에 잠깐 다른 장사를 해보셨지만

다시 음식 장사를 하셨고 그게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네요.

노점에서 시작해 가게라는 걸 처음 차려서 장사를 하시고 10여년 장사하시다

지금 가게에 정착한건 25여년 정도 

시골 전통시장 내 테이블 8개 작은 가게입니다.

손님 대부분이 단골이시고그냥 저렴하게 한끼 드시는 그런 가게


저녁에 문득 

손님들이 다 나이드신분들이라 그 입맛에 자꾸 맞춰 짜게 하시나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장사를 마치고 어머니랑 이야기를 나눴어요.


1. 기본적으로 간을 약하게 하셔라 

2. 간을 다하고 나면 염도측정기 사용하시라


어머니는

1. 계량을 하는게 익숙하지 못하고

2. 반찬이라는게 항상 같은걸 하는게 아니다보니 재료에 따라 간을 다르게 하다보니 계량은 불가능하다.

3. 국물은 가능한데 반찬은 불가능


그런데 어머니가 계량은 몰라도 소금이랑 설탕, 간장 등 숟가락으로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노력하시겠다고 하셨고

요즘 다리도 너무 아프고 귀도 잘 안들리시는 거 때문에 장사 살살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몇년만 더하고 그만하시겠다고 하셨네요.

아마 형님의 정년은퇴 시기랑 맞추시나 봅니다.


제가 요즘 경남 고성이 고향이신 어머니를 위해 땅을 찾고 있거든요.

그때즈음 사업을 넘기고 내려올 예정입니다. 


통발 던져서 물고기 잡고

소소한 농사짓고

여행 다니며 

그렇게 살려구요~~~~~



PS

전 비가 오는 날이 참 좋습니다.

어릴때 비가오면 어머닌 장사하러 안가셨거든요.

학교 마치고 집에 오면 어머니가 계시니깐요.

그래서 지금도 비가오면 너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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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0

기본적인생각님의 댓글

고등학교시절 푸세식 신문지 썼다는데
 고등시절이 1950년도였나요?
 그때 누구나 푸세식 신문지 사용
 그리고 그때 고등교육 받기도 쉽지 않았어요
 아쉬운건 님의 나이 추정할수 있는
 나이때를 적으시면 더 힘든시기가 공감갈듯요..1970년대생인지 80년대생인지...

닭다리잡고삐약님의 댓글

저희 친정집 80년후반까지 신문지 사용했어요 푸세식은  90년대까지 사용했어요

솔깃하게님의 댓글

82년생입니다 경기도 살았고 푸세식에 신문지 문질러 본 1인

김빨대님의 댓글

같은 말을 하더라도 기분 나쁘게 하시는 재주가 있으시네요

닭다리잡고삐약님의 댓글

저도 비오는날 좋아해요  비오는날은 학교 다녀오면 엄마가 집에 있으니깐요  농사일 바다일 안나가고  간식해주시고  눈물나요

니몸을찾아서님의 댓글

공감되시죠
 비가 오는걸 좋아해서 여름이 좋고
 태풍이 불면 지붕이 날라가 밤새 지붕에 돌을 주워다 올렸지만 그래도 비오는 태풍이 좋습니다
 ㅜㅜ

신촌흰둥이님의 댓글

정독했습니다
 저 중학교때 시장통을 지나서 학교룰 다녔는데 친구가 시장에서 일하시는 어머니 리어커 끄는모습을 자주 봤었죠 참 성실한 친구였는데 체구는 작았어요 근데 소위말해 일찐아라는 녀석이 그친구한테 시비를 걸텨 툭툭치는데 그냥 고개숙여 맞고 잇더군요
 
 그러다 시장에 일하시는 어머니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그친구를 잡아서 진짜 패대기를 처버리더군요 힘이 장사였음 마구잡이로 때리는데 말리는 사람 아무도 없음 다들 잘됐다는 심정이였겠지요
 
 아무튼 시장 리어커 이야기 하니까 갑자기 생각이 났네요

야발라바하이발모님의 댓글

경남 고성에 요즘 땅 많이 나옵니다.
 저도 고성이나 그 인근지역 보는 중인데 많아요.
 좋은곳 구해 잘 사시길 기원 합니다

루시드에비뉴님의 댓글

떡집 댓글단 1인입니다..
 
 어머니가 하시는 일...
 
 자신의 인생입니다.
 
 저희 어머니도 그러셨고
 
 저도 어제 글 읽고 나서
 
 좀 더 하시게 냅둘까??라고
 
 형제들이 수차례 의논 했던 기억이...
 
 건강하시면
 
 당신께서 그냥 후련하게
 
 정리 하는 그날까지
 
 지켜보는것도 효도라 생각합니다.
 
 어머니도 어머니의 인생이 있으니.
 
 우리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걱정스러움이지만
 
 어머니 입장에서는
 
 그건 당신의 유일한 사생활이더라구요..

올갱이국밥님의 댓글

비오는 날 공감이 됩니다.
 할아버지와 동네 앞 냇가에서 고기를 잡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네오그라피님의 댓글

저와 자라온 처지가 너무 비슷하네요.
 저도 고등학교때까진 동네 공동 화장실(푸세식) 사용했어요
 정말 싫은건 겨울이죠.
 
 그리고 저의 어머님도 정말 일찍부터 포장마차를 하셨는데
 제가 장남이라 국민학교 3학년때부터 포장마차를 같이 밀고
 천막치고 물 길어오고 그랬어요
 너무 긴 세월 동안 포장마차를 하셔서
 어머님의 10손가락 마디가 모두 굽으셧죠..
 
 이 글을 보는 순간 정말 저의 어머님과 저의 얘기처럼
 동화되는 느낌이네요..
 비록 저는 작년에 어머님이 돌아가셨지만
 작성자님의 어머님은 오래 오래 건강하게 지내시길
 진심을 다해 기원 드릴께요..
 효도 별거 없더라고요
 자주 대화하고 자주 얼굴보고 그게 효도 같아요.

키키키드님의 댓글

그 시절 어머니들은 자식 키우면서도 그 모진 고생들 어떻게 견디셨을까 싶네요. 지금 세대는 상상도 못할 것임. 뭔가를 견딘다는 생각도 지금 4050이 마지막이지 않을까 싶네요

똘스토이님의 댓글

전에도 댓글 썼었는데
 가게밖의 세상으로 여행 보내드릴때까지 쫓아다니면서 잔소리 할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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